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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et Time/John

그토록 강조하신 사랑




오늘은 Q.T.를 시작하는 기도를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과연 내가 이렇게 한 Q.T.를 블로그에 올리는게 잘하는 일일까? 근데 문뜩 다음에 바로든 생각이 인터뷰. 난 Q.T.를 묵상이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생각하고 싶다. 기도로써도 대화를 하지만 편지로써도 대화를 하지 않는가? 그렇다 나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다른 사람들에게 인터뷰 하듯이 전하는 것 그 뿐이란 생각을 했다. 물론 내 생각을 아버지께 말씀드리는 것도 인터뷰의 일부분이고 말이다. 이상하게 오늘은 Q.T.를 시작하기전 말이 많아지는데 요즘 다시 아주 자연스럽게 밤에 잠을 못자고 있다. 계속 잠을 청하지만 온 갖 잡생각이 떠올라 잠들 수 없다. 그래서 이런 고요하고 조용한 시간에 아버지와 대화를 하게 되는 건 좋지만 낮에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고민이다.

  • John 14

0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우리를 위해 십자가 못 박히시기 전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다. 초반 부터 갑자기 이 말씀에서 무언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예수님의 희생에 대한 생각이 살짝 바뀐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위해 거처를 마련하시러 가신다는 말씀. 내가 때가 되어 그 거처에 머물러 갔을때 어떤 기분일까? 수 천년 전 아버지께서 나를위해 마련해주신 거처에서 살게 되다니, 그리고 아버지의 약속은 수 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유효하다니, 감개무량할 듯 싶다.

0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자신이 가시는 길을 제자들은 알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도마가 궁금해하며 자신은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실 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대답이시다. 성경을 읽다보면 특히 예수님께서 이렇게 질문에 답하시는 부분을 읽을때면 우리말 성경으로 읽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다시 읽게 된다. 내 머리가 안 좋아서 그런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답변이 많다. 꼭 동문서답과 같이 말이다. 그런데 그 분은 완벽하신 분이신데 동문서답을 하실리가 없고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면 아직도 나의 믿음과 성경에 대한 혹은 예수님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부족했음을 느낀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또 해설을 읽는 입장으로써 위험한 해석을 하자면 도마에게 하시고 싶으셨던 말씀은 ‘나는 아버지 하나님께로 간다’가 아니었을까 싶다.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우리가 기도를 함으로써 응답을 받는 알고리즘을 설명해주신 것 같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나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큰 일을 함으로써 나의 기도에 응답을 받은 것인데 그 응답은 아버지께로 가신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말씀드리기 때문이란 것이다. 믿음 -> 예수님 -> 아버지(하나님) -> 응답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3절에서부터 두번 연속으로 하시는 말씀이다. 무척 달콤한 말씀이 아닐까? 무엇이든지 구하라는 말씀 또 그것을 이루어 주시겠다는 말씀. 한동대학교에 있을 때 채플 시간 이런 말씀을 들었다.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어떤것이든 들어주시지만 그 조건은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단순하게 로또를 당첨되게 해달라던가 저 여자를 나의 여자친구로 만들어 달라는 것 따위는 구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 나는 그럼 아직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걸까? 딱 이 말씀에서 생각난건 그런 세상적인 것이 먼저였는데. 확실한건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강조하고 싶어 하셨다는 것. 과연 하시고자 하신 말씀이 무엇일까? 그리고 난 이 말씀을 듣고 그 분께 무엇을 먼저 구해야 할까? 정말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6절에서 보혜사를 보내 주시겠다는 말씀을 보고 밑에 주석을 따라가보니 보혜사는 조력자, 변호자, 상담자라고 하셨다. 내가 위험에 처하거나 어떤 일을 할때에 옆에서 서포트 해줄 조력자와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힘들어 할때 변호해줄 변호자, 나의 답답한 심정을 토로할 수 있고 잘 들어주는 상담자. 이 모두를 주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뭐가 있을까? 진정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완벽한 보디가드 일 것이다.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예수님의 약속이시다. 찬송가에도 자주 나오는 부분인 것 같은데, 참 어떻게 보면 무진장 슬픈 말씀인 것 같다. 난 지금 세상에서 고아인 것이 아닌가? 정말 완벽한 보혜사를 보내 주시긴 하셨지만 당장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없고 다시 돌아오실 그 날 까지 볼 수도 없으니, 이 얼마나 비극일까? 말문이 막힌다. 고아. 참 낯설었던 단어인데 내가 그런 고아라니. 멍하다. 그래도 확실한건 정말 진정한 고아는 아니다 라는것. 지금은 단지 세상에 나홀로 있는 것 같지만 일단 든든한 보혜사가 있고 또 100%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올테니 말이다.

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교회를 다니다 보면 정말 많은 일들이 세상적 유혹으로 변한다. 뭐 모두가 알다 싶이 술먹는 것 부터 시작해서 혼전순결 등. 그리고 이렇게도 말한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행복하길 바라시는데 또 내가 즐겁게 살길 원하시는데 왜 내가 이렇게 고통받으며 술을 먹지 않아야 하고 고지식한 사람처럼 낙인 받아야 하느냐고. 그런데 아직 나도 이런 말에 넘어지기 쉬운 사람이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과연 이런 일들이 아버지를 사랑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일까란 생각. 그리고 내가 아버지를 사랑함으로써 자신을 나타내실때 이런 모습일까란 생각. 글쎄 아직까진 내가 성경을 모두 읽고 완벽한 이해를 한 건 아니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술 먹고 취하여 비틀거리고 사리분별 못하거나 그저 쾌락에만 빠져 사는 삶을 아버지꼐서 사시진 않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만약 그런 모습을 한다면 진정으로 그 분을 사랑하고는 있는가 하는 것. 오~ 뭔가 확실한 당위성을 찾은 것 같다. 이런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나누어야 할 것 같다.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22절에서 가롯유다가 아닌 유다가 예수님께 질문하길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라고 했다. 나도 갑자기 궁금해 졌는데 아버지의 대답은 23절과 같다. 살짝 아버지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는게 아닐까 싶다.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추려내고 싶으셔서 말이다. 나를 사랑한다면 널 내 곁에 두겠다는 듯 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나와 같이 행동할 것이라는 말까지 하신 것 보면 자신과 정말 닮은 사람을 추리는 것 같기도 하다. 참 어떻게보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중에서도 그 분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그 분을 모욕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닉하다.

  • John 15

0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포도나무 비유다. 물론 이번에도 내가 참 좋아하는 비유 중 하나이다. 위에 나의 생각과 조금은 일맥 상통하는 부분인데. 아버지께서는 역시 우리 중에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고(열매 맺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가지)들을 제거하신다고 하셨다. 혹시 나는 열매 맺지 않는 가지가 되진 않을까 두렵고 또 쳐내어질 가지들도 안타깝다.

0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열매란 것이 정확하게 무엇일까? 확실한건 그 열매가 세상적 성공을 말하는건 아니라는 것.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내로라하는 성공을 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게 열매일까? 혹시 구원을 말씀하시는건 아닐까? 6절에서 보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잘려나간 가지는 결국 불속에 태워질 것이라는 말은 지옥을 설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난 사랑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마지막까지 강조하셨던 말씀 ‘서로 사랑하라’. 항상 나보고 냉정하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냉정할 수 있을까? 따듯해야지. 그렇다면 나는 분명 아버지께서 주신 계명을 잘 지키지 못하고 있는 건데 어떻게 하면 사랑을 실천하며 살 수 있을까. 확실히 미워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 등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다면 절대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부터 사랑하지 못하는데 남은 또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먼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물론 나의 능력으론 역부족이겠지만 아버지께 구해보면 되지 않을까? 무엇이든 이루어 주시는 분인데.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아버지를 믿음으로써 올 고통을 미리 예견하시는 부분이다. 난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안하는 편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난 그게 정말 확실하다. 근데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는 일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나는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나를 택하셨고 그렇기에 세상은 나를 미워할 것이라는.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는건 맞지만 이 일은 내가 하기싫어서 안 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일이고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왜냐면 나는 아버지께 선택 받았으니깐. 참 간단하지 않은가? 또 앞으로 올 미움에 대해 두려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짜피 올 일이라면 즐기는 편이 낫지 않겠나? Carpe Diem!

오늘은 2장 밖에 읽지 못했지만 벌써 3페이지인 것을 보면 참 할 말이 많았나 보다. 그런데 살짝 주의해야 할 것이 느껴졌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에게 저런 말씀을 하셨을까로 접근해야지 왜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실까로 접근하면 더 어려워 질 것 같다. 다음 Q.T. 땐 더 성숙한 마음과 모습으로 성경을 읽고 아니 그 분의 편지를 읽고 내 생각을 정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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