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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et Time/John

눈물을 흘리신 예수님

난 작심 3일도 맞지 않는 말인 것 같다. 매 번 하는 얘기지만 정말 내 영은 갈급하여야 한다. 하지만 갈급하지 않은 것 처럼 행동하는 나는 정말 뭐가 문제지? 정말 하나님께 책임을 문책 받은 다음에야 갈급한 영을 채우려 할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꾸준한 Q.T.를 위해 최선을 다해보자.

  • John 10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10장의 앞선 말씀에선 계속 양과 목자의 관한 비유를 하신다. 나는 양이요 예수님께서는 선한 목자라는 비유. 비유 중에서도 내가 선호하는 비유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을 잘 알고있는 이미지로 설명하는 그런 비유.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거닐고 있는 양에 대해선 목숨을 다 받쳐서 지켜 주신다고 하시지만, 그렇지 않은 양들에 대해선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듣는다며 불쌍히 여기신다. 왠지 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지 못하는 양은 아닐까 싶다. 정말 필수적인 말을 제외하곤 잘 알아듣지 못하는 그런 멍청한 양. 그게 내가 아닐까?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님께서 우리를 신이라 하셨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솔직히 나도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 오늘날에 어떤 사람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또한 하나님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 그런데 율법에도 나도 신이 될 수 있단 말을 듣고 보니 어느정도 정당성은 확보된 셈인 것이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신에 대한 개념을 누가 과연 확실하게 말 할 수 있을까? 그것도 구체적으로. 그런면에서 내가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아들이라면 나도 신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논리적으로 말이다. 뭔가 복잡하고 어렵다.

  • John 11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이라는 주제로 흘러간 11장 말씀은 유명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렇게 성경을 통해 보는건 처음이다. 즉, 나는 성경을 이렇게 제대로 읽은적이 없다란 말씀. 각설하고 예수님께서는 왜 눈물을 흘리셨을까 생각해봤다. 분명 예수님이 사랑했던 나사로고 또한 마리아, 마르다였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죽은 나사로 때문에 통곡하고 애통했으며 예수님 또한 죽은 나사로 때문에 슬퍼하셨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이상하다. 왜냐면 분명 나사로는 예수님을 믿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천국에 갔고 영생을 얻었는데 왜 슬퍼하셨을까? 또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 앞에서 까지 살려달라고 애원했을까? 누구에게나 한번의 죽음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죽음이 두렵고 슬픈 이유는 사후 세계에대한 생각때문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그 사후세계에 대해 잘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슬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아마 나의 생각으로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신 이유는 유대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듣고 믿으려 하지않고 그져 신이라고 했던 한마디에 흥분하는 모습을 보고 불쌍한 영혼 때문에 아팠던 마음을 나사로를 살리시면서 믿지 않는 영혼들 때문에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 싶으셨던 건 아닐까? 그래서 슬프셨던 건 아닐까? 우둔한 우리의 모습을 불쌍히 여기신 마음 때문에.

  • John 12

42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지금까지 난 바리세파 사람들을 보며 멍청하다. 바보같다.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나 같으면 당연히 예수님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니 그들은 집권층이였고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 만큼 누리는게 컷었다. 하지만 그런 모든것을 포기해야하는게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들에게는 세상적으로 봤을때 정말 큰 리스크가 있었던 것이다. 과연 내가 세상에서 바리세파 사람들과 같이 잃어야 할 것이 많았다면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을까? 단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도 상급을 쌓는걸로만 취급하고 상급 없어도 되니 안하면 될 것 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의 미약한 나인데 말이다. 그렇다 세상에서의 삶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예수님을 믿기란 정말 어려운 것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는다면 진정 그분이 날 대려가실 것이다. 친히 말이다.

  • John 13

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정말 진정으로 불쌍하다 느껴졌다. 가롯 유다는 과연 그 빵을 받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만약 나라면 무척 기분이 나빴을 것 같다. 나와 같은 제자들이 주위에 있는데 모두가 자신은 예수님께 충직한 충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자기는 그런 충신들 사이에서 배신자라니 얼마나 청천벽력과 같을까? 없던 마음도 생길 것 같다. 그러나 이 모든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에 가롯유다가 불쌍해 지는 것이다. 이런 나의 마음은 잘 못 된것은 아니겠지?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라는 기준을 세워 주신다. 사랑. 어떻게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큰 뜻을 배운다는 의미이고 결국 예수님과 같이 되기 위한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길의 기준이 바로 사랑이라는데 내가 항상 예수님을 닮길 원한다는 고백은 어쩌면 서로 사랑하기 전엔 할 수 없는 말이 될 것 같다. 서로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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